질문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은 누가 번역했습니다?어떻게 번역되었습니까?사용된 사본은 어떤 것을 썼을까요?응답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이 나오게 된 배경이 궁금하네요.킹 제임스 성경의 역사에 대해서 투고합니다.참고로 봐주세요.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게 된 계기”햄프턴 왕궁 회의”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시대가 끝날 무렵(1558-1603) 새로운 성서 번역본을 만들기 위한 의회의 조례안이 나옵니다.”영어로 되어 있는 성경의 다양성을 줄이고 원문에서 번역된 단 하나의 영역본을 만들기 위한 조례”이 바로 그겁니다.1568년에 출판된 비숍 성서(The Bishop’s Bible)이 비록 위대한 성경(The Great Bible)을 압도했지만 제네바 성서와는 여전히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던 때는 이 조례안이 실행될 것은 아니었지만, 1603년 튜더 아침부터 스튜어트 왕조에 영국 왕조가 바뀌면서 제임스 1세가 왕위를 잇게 되었습니다.당신은 제임스 6세로 37살이었습니다.그는 제네바 성서와 비숍 성서가 나온 그 사이에 태어난 것입니다.새로 즉위한 임금이 실시된 다양한 시책 중, 최초의 것의 하나는 1604년 1월에 소집한 햄프턴 왕국 회의였어요.이 회의는 교회 내의 잘못된 일을 청문하는 결정하기 위한 것으로 감독들, 성직자, 교수 및 청나라 도교 목사들이 모여서 청교도들의 불평 사항을 심의했습니다.이 회의의 의사 일정에는 성경 개정에 관한 사항은 없었지만, 코토우스·크리스티 대학의 학장에서 청교도였던 존·레이놀즈가 헨리 8세와 에드워드 6세 아래에서 허용된 성경 번역본은 원문의 진리에 충실하지 않은 정도로 부패했기 때문에 새로운 성경 번역이 필요하다고 왕을 설득했습니다.이에 대해서 제임스 왕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짐은 영어로 잘 번역된 성경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제네바 성경은 가장 심한 것 같아. 짐은 두 대학(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의 가장 학식 있는 학자들이 새 성경을 번역해 감독들이 검토해 추밀원에 제출하면 왕의 권위로 비준해 교회 전체에서 읽을 수 있도록 하기를 원하므로 이 성경 말고는 다른 성경이 없도록 통일된 번역이 되기를 바란다.
이에 드디어 다음과 같은 결의안이 승인되었습니다.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철저하게 일치하는 성경 전체를 번역한다. 이 성경은 난초 외주 없이 제작 출판돼 영국의 모든 교회에서 예배할 때 사용될 것이다.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위원 선정’ 성경 번역의 다음 단계는 번역위원을 선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1604년 제임스 왕은 뱅크로프트 감독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성경 번역을 위해 54명의 학자를 임명했다고 알렸습니다. 그들은 당시 최고의 성서학자이자 언어학자였습니다. 성경이 완성된 후 그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번역에 뽑힌 사람들은 자신들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더 훌륭한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의 명예보다는 진리를 추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그 일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배운 것을 가지고 일하기 위해 모은 사람들이었다.
제임스 국왕에 따르면 다른 인물도 찾았는데, 이는 “우리가 시도하는 번역이 우리 왕국 속에 있는 모든 주요 학자의 도움과 참여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비록 54명의 학자가 임명됐지만, 번역에 실제로 참가한 사람은 47명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번역은 6개 그룹으로 나뉘어 치러지며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캔 브리지, 옥스퍼드의 3가지 장소에서 각각 있었습니다.웨스트민스터에서는 10명의 학자가 창세기부터 렬왕기 아래까지 7명의 학자가 로마에서 유다서까지 번역을 담당했습니다.캠페인 브릿지에서는 8사람의 학자가 역대 기상에서 전도서까지, 그리고7사람의 다른 학자들은 외경을 담당했습니다.옥스퍼드에서는 7명이 이사야에서 마라들까지 다른 8명이 네 복음서, 사도행전과 요한 묵시록을 담당했습니다.”번역의 원칙과 진행 과정”번역의 지침으로서 15의 기본 원칙이 주어졌습니다.
제임스 국왕에 따르면 다른 인물들도 찾았는데, 이는 “우리가 시도하는 번역이 우리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주요 학자들의 도움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비록 54명의 학자가 임명되었지만 번역에 실제로 참여한 사람은 47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번역은 6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이루어졌으며,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캠브리지, 옥스퍼드의 3개 장소에서 각각 모였습니다.웨스트민스터에서는 10명의 학자가 창세기부터 열왕기 하까지, 7명의 학자가 로마에서 유다서까지의 번역을 담당했습니다. 캠브리지에서는 8명의 학자들이 역대 기상부터 전도서까지 그리고 7명의 다른 학자들은 외경을 담당했습니다. 옥스퍼드에서는 7명이 이사야에서 말라키까지 다른 8명이 사복음서, 사도행전 및 요한계시록을 담당했습니다.’번역의 원칙과 진행 과정’ 번역 지침으로 15가지 기본 원칙이 주어졌습니다.
번역 작업은 1604년에 시작되어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번역자들은 그들이 번역 초기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서문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선량한 기독교 독자들이여) 사실 우리는 처음부터 새로운 번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쁜 번역에서 좋은 번역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의도는 좋은 번역을 더 좋게 하자는 데 있고, 혹은 여러 좋은 번역본에서 하나의 가장 좋은 것을 만들어내서 적당히 제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수고였다.그들은 그 이전에 나왔던 모든 영어 번역본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들을 멸시하지 않았습니다.우리는 우리에 앞서 성경을 번역한 분들의 노력을 결코 비난하지 않는 곳이다. 국내든 국외든 헨리 8세 시대든 에드워드 혹은 영광스러운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이든 그들은 하나님이 불러 일으켜 그분의 교회를 짓고 먹여 살리는 데 쓰였음을 우리 모두는 인정하는 바이다. 따라서 이분들은 우리 세대와 후세에 대대적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또한 번역자 자신이 인정하듯이, 그들은 수많은 참조 자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우리는 다른 번역가, 해설자, 칼데어, 히브리어, 시리아어, 헬라어, 라틴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와 팔랑고 등을 참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이들은 에라스무스, 스테파누스, 베자의 헬라어 성경은 물론 콤프로텐시안과 앙투아프 폴리그롯 및 퍼그니우서, 트레멜리우스, 베자 등의 라틴어 번역도 쉽게 참조할 수 있었습니다.6팀에 의해 초역이 완성된 것은 4년 후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번역 작업에 있어 엄격하고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우리는 우리가 한 작업의 교열을 경시하거나 우리가 만들어낸 작품을 재심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우리는 꼭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받아 게으름에 대한 책망이 없음을 오히려 두려워했고, 이 작업으로 인해 칭찬받고 싶지 않았고, 다만 우리 위에 임재하신 주님의 선한 손가락 끝을 통해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성경을 마침내 내놓게 되었습니다.여섯 팀 각각의 회의가 끝날 무렵에는 9개월이 걸렸는데 웨스트민스터, 캠브리지, 옥스퍼드 3곳에서 2명씩이 와서 런던 스테이셔너스홀(런던서적출판업조합 사무소)에 모여 완성된 번역 교열과 검토를 마쳤다. 그 후 최종 교열은 마일스 스미스와 토마스 빌슨에 의해 완료되었고 서문은 스미스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1611 초판인쇄’ 완성된 성경은 1611년에 출판되었는데 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원어에서 새로 번역되어 국왕 폐하의 특명으로 이전 번역본을 열심히 비교하여 개정하였다. 교회에서 읽을 수 있도록 지정된 성경.고귀한 국왕 폐하의 출판 담당인 로버트 바커사에 의해 런던에서 인쇄되었다. A.D. 1611″신약성경은 별도로 표지가 있으며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우리의 주님이자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약 헬라어 원문에서 새롭게 번역되어 국왕 폐하의 특명으로 이전 번역본을 열심히 비교하고 개정하였다. 고귀한 국왕 폐하의 출판 담당인 로버트 바커사에 의해 런던에서 인쇄되었다. AD1611은 큰 특권이다.<킹 제임스 성경>는 초판은 그레이트 성경(Great Bible)보다 컸습니다.검은 활자로 인쇄된 이 성경은 원어에 없는 단어는 작은 이탤릭체의 로마형의 활자로 표시되고 있습니다.국왕(국왕 자신은 이 성서를 매우 높이 평가했지만)에 쓴 헌사에는 “영어로 쓰여진 보다 정확한 성경 번역이 없으면 안 된다”라는 국왕의 열망이 있었음을 상기하고 있습니다.번역자들은 “자신들은 신의 성스러운 진리가 더욱 알려지도록 하는데 사용된 부족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이와 동시에 그들은 “교황의 추종자들”(Popish persons)가 사람들을 “무지와 어둠”속에 가두어두고 있다고 분별 있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 』의 여러 판본”이 성경은 “공천 역본”(Authorized Version)라고 불리게 되었지만 훗날 여러 차례의 판본으로 교열을 거치고 있습니다.1629년과 1638년에 케임브리지에서 인쇄된 유명한 2판본이 있는데, 후자는 원래 번역자였던 존·보이스와 사무엘·워드가 참여하고 출판되었습니다.1657년, 의회는 다른 교정 책을 계획했지만 실패했습니다.가장 유명한 판본으로는 1762년에 토마스·파리스에 의해서 행해진 케임브리지 교정 책과 1769년에 벤저민·부레 남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옥스퍼드 교정 책입니다.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성구 사전(Concordances)는 1632년판에 맞추어 존·다운 햄이 만든 것으로<A Concordance to the Bible of the Last Translation>입니다.제네바 성서는 1644년에 마지막으로 인쇄되었습니다.그러나 그란 외주는 『 킹 제임스 성경 』 본문과 함께 출판되었어요.기타 많은 성서도 제네바 성서처럼 사라지는,<킹 제임스 성경>이 사용되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 』에 대한 평가”알렉산더·메지 리스(1802사망)는 로마 가톨릭 사제가 1792년에 자신의 번역본 1권을 출간했는데 당신의 성경이었다 『 킹 제임스 성경 』에 대해서 다음의 찬사를 보냈습니다.제임스 1세의 역본에 대해서는 국내외를 망라해 가장 큰 찬사가 쏟아졌다. 훌륭한 역본 자격인 정확성 충실성 원문철에 대한 철저한 주의 등이라면 이 공인역본이야말로 최고의 성경으로 여겨져야 한다. 모든 문장, 모든 작업, 모든 음절, 모든 철자 및 구두점까지도 정확하게 측정한 것으로 보이며 본문이나 난외주도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다.<킹 제임스 성경>이 공식적으로 ‘공인’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대표적인 성경 변개자인 웨스트코트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킹 제임스 성경은 17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에 걸쳐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 사이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성경이었는데 이는 이 성경이 최고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거의 한 세기에 걸친 노력의 결실을 구체화하고 위대한 기독교인의 종교적 본능에 강한 호소력을 지닌 이 성경은 그 자체의 특성에 따라 어떤 통치자의 칙령도 확보할 수 없는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킹 제임스 성경은 17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에 걸쳐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 사이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성경이었는데 이는 이 성경이 최고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거의 한 세기에 걸친 노력의 결실을 구체화하고 위대한 기독교인의 종교적 본능에 강한 호소력을 지닌 이 성경은 그 자체의 특성에 따라 어떤 통치자의 칙령도 확보할 수 없는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킹 제임스 성경은 17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에 걸쳐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 사이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성경이었는데 이는 이 성경이 최고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거의 한 세기에 걸친 노력의 결실을 구체화하고 위대한 기독교인의 종교적 본능에 강한 호소력을 지닌 이 성경은 그 자체의 특성에 따라 어떤 통치자의 칙령도 확보할 수 없는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킹 제임스 성경은 17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에 걸쳐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 사이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성경이었는데 이는 이 성경이 최고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거의 한 세기에 걸친 노력의 결실을 구체화하고 위대한 기독교인의 종교적 본능에 강한 호소력을 지닌 이 성경은 그 자체의 특성에 따라 어떤 통치자의 칙령도 확보할 수 없는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